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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의 군대 시절 상사(사진 왼쪽)와 함께. 결핵에 걸려 후송될 때는 몸무게가 46㎏이었다.
월남 파송선 대신 후송열차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대한 나는 매우 부실한 군 생활을 보냈다. 소속 부대도 몇 차례 바뀌었고, 근무지도 이곳저곳 우왕좌왕했다. 그 알량한 학력 때문에 병사 본연의 임무와는 동떨어진 사역(私役)에 차출되기도 했다. 실로 많은 사람들을 스쳤지만 군복을 벗고도 교류를 이어가는 전우는 단 한 사람, 박재균뿐이다. 그가 나의 선임이었기에 졸병 시절 구타와 같은 험악한 일은 거의 당하지 않았다. 내가 부대를 옮긴 후에도 제대할 때까지 시종일관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고 군복을 벗은 지 반세기가 넘은 이날까지 신실한 벗으로 남아있다. 더없이 총명, 근면, 정직한 그는 불우한 소년 시절의 트라우마를 다스리며 건강한 생활인의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고락을 함께했던 아내를 먼저 보내고 팔십 노인이 되어서도 어머니와 아내를 그리는 시를 쓴다.
당초 군에 입대할 때는 나는 어렴풋이 월남전에 지원할 포부를 품고 있었다.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고, 명분 있는 죽음은 오히려 내 비루한 일상을 벗어던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만약 살아남으면 전장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나를 사로잡은 위대한 소설은 하나같이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한계 상황의 산물이었다. 후일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나는 군대와 죽음에 대한 당시의 심경을 헤아려 보는 글을 썼다. 쓰면서도 여전히 사춘기 치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열다섯 살 때 나의 소망 중의 하나가 스물다섯에 결핵에 걸려 죽는 것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에 이르는 과정으로서의 결핵 앓이가 소망이었다. 고독, 격리, 퇴폐, 낭만의 복합체가 바로 결핵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세상의 원색(原色)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회색이 아닐까 하고 상상한 적이 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회색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가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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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圖畫, 초등학교 초년 시절에 미술 과목을 이렇게 불렀다)' 시간에 접고 오리는 색종이에 회색이 없음을 불평했고, 추석빔 양말을 직접 고르거나 하여 드물게 선택권이 주어질 때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회색을 택했다. 먼 후일 최인훈의 소설 제목 《회색인》을 접하면서 어쩌면 그 언어는 본시 나의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80년대 중반에 화가 이청운이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며 검정과 회색으로 '구석 시리즈'를 칠해 나갈 때 그룸바하 물감에 회색이 모자란 게 그처럼 안타까웠다. 만년에 마크 로스코가 검정과 회색으로 예술의 결산을 보려다 동맥을 끊고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고 무심결에 손목에 걸린 시곗줄을 밀쳐보던 나였다.
그러한 나였기에 색상과 순도가 없는 무채색, 그중에서도 회색이야말로 세상의 원색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회색이 아니면 색이 아니라고 생각한 시절에 결핵에는 적과 백의 황홀한 대립과 대조의 신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선혈을 받아내는 갈분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빳빳한 하얀 침대 시트, 그것은 실로 황홀한 상상이었다. 어린 시절에도 나는 죽음이 낯설지 않았다. 전쟁 이후 지천으로 깔린 죽음의 현장을 스쳐 다니기도 했다. 여러 유형의 죽음 중에 결핵으로 인한 죽음이 가장 문자와 가까운 죽음이었다. 가장 지식인다운 죽음, 전쟁과 무관한 죽음, 남이 내찌르는 죽음이 아니라, 폭음과 담배와 아편으로 스스로 몰아가는 죽음이었다. 중학 시절 이상(李箱)을 흠모하던 국어 선생의 하숙방 냄새와 애써 짓는 그의 부자연스럽게 음울한 표정에서 나의 정신은 이미 결핵에 감염되어 있었다. 그에게서 빌린 책, 몰래 훔쳐본 그의 연애편지에도 결핵균의 현란한 군무가 펼쳐지고 있었다.
스물다섯에 나는 열다섯 시절 소망의 절반을 이루었다. 죽지는 못했지만 결핵에 걸린 것이었다. 월남 파병을 소망하던 연약한 육군 상병의 늑막과 폐를 결핵균이 무참하게 유린했고, 링거 세 병 반의 누런 진액이 빠진 46킬로그램의 피골덩이는 후송열차에 실려 마산국군통합병원에 떠밀려졌다.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한 의미를 전쟁터에서 죽음의 모습, 한계 상황에 선 인간의 모습을 확인하는 데서 찾겠다는 속내는 처음부터 허사였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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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어린 나이에 겪은 전쟁이기에 전쟁통에 잃어버린 유년의 신비로운 환각은 어딘가 전장에서라면 되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춘기가 긴 문학소년의 치기였다. 결핵병원으로 달리는 후송열차 속에서도 나는 마치 월남 파송선을 타고 전장으로 떠나는 듯한 환각 속에 헤매었다.
병사에게 결핵은 커다란 사치였다. 육체적으로 고달픈 졸병 생활, 그중에서도 대학을 다녔다는 이유 때문에 덤으로 받아야 했던 각종 수모로부터 해방되는 천우신조의 기회가 아닌가? 더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군복을 벗게 되는, 기껏해야 시한부 환자가 아닌가? 이미 나의 결핵은 죽을 병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고, 따라서 죽음에 이르는 황홀한 과정도 없었다. 오래전에 문학은 저만치 내게서 멀어졌지만, 일찌감치 익힌 문학소년의 치기만은 해를 거듭하면서 오히려 환각과 퇴폐의 감상을 덧칠해서 위험의 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5년간의 정양을 요함'이라는 군의관의 진단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나의 의식은 언제나 죽음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5년이란 아주 짧은 시일에 불과했지만 당시의 나의 의식은 항상 죽음 근처에 와 있었던 것이다. 군복과 결핵을 벗어던지면 다시금 사람들과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불안이 나로 하여금 죽음의 환각 속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욕망에 불을 질렀는지도 모른다."
(안경환, '문학과 결핵, 서태지와 본드', 〈참여사회〉 1997. 9)
유사 환각 시대, 겨울날의 몽상
마산군통합병원에서 머무른 여섯 달은 나의 유사 환각 시대의 절정이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전 군의 폐병쟁이들이 무질서하게 군집해 있었다. 명색이 군대인 이상 계급에 따른 군기가 없을 수는 없지만 누가 죽음에 더 가까이 와 있는가로 또 하나의 계급이 결정되는 곳이었다. 중환자 병동은 따로 있었다. 솔제니친의 《암병동》이 천지를 흔들던 바로 그해였고, 그 음산한 대륙의 암담한 죽음의 내음이 디킨스가 그린 런던의 안개처럼 내 폐부와 골수에 가득 스며들어 있었다. 그 병동에서 누군가가 짧은 일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라도 전해지는 날이면 결핵쟁이들은 거의 발광에 가까운 우울 속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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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병역 기피의 수단으로 일시 수용되어 있는, 건장하기 짝이 없는 '나이롱 환자'들까지도 이때만은 짐짓 죽음에 가까이 와 있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짓곤 했다.
나는 그곳에서 또 하나의 환각을 보았다. 하얀 모자, 붉은 뺨에 하얀 얼굴의, 젊다기보다 어린 간호사의 모습은 실로 하나의 작은 성화(聖畫)였다. 소위 계급장만큼 작은 몸체는 젊은 사내들의 거친 언어에 부대끼어 더욱 작게 느껴지지만 애써 장교의 위엄을 찾으려는 안쓰러운 자태는 내가 그처럼 갖고 싶었던 누이동생의 모습이었다. 그녀 앞에 시든 볼기를 드러내야 하는 나의 수치심만큼 그녀도 시선의 안착이 어려웠던지 주사기를 통해 나직한 손떨림이 전해왔다. 그녀야말로 《암병동》의 여의사, 강가르트의 현신이 아니겠나. 정확한 서울 말씨, 왠지 일기를 쓸 것만 같은 느낌, 그 일기의 한구석에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한 구절만이라도 내 이야기가 담겼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불면의 시간을 보냈던가? 딱 한 번 찾은 그녀의 방에서 고전음악이 흘러나왔다. 차이콥스키의 《겨울날의 몽상》이라고 했다. 작가 자신이 표제를 붙인 유일한 곡이라고 했다.
어느 몹시 춥던 겨울날, 정동의 다방에서 "만날 수 있으면 만나자"는 전갈이 내게 도착한 것은 야속하게도 몇 시간 후, 황급히 달려나간 그 자리엔 메모 쪽지 대신 작은 몸을 얹었던 동그란 궤적만이 겨울날의 몽상을 질책하고 있었다. 쉰 번도 더 넘게 겨울이 왔다 떠났다. 유사 환각 시절의 사람들은 대부분 한 차례 부딪치거나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나 대신 전장의 소식을 전해주마 하면서 월남으로 떠나간 그녀만이 환각의 세월 속에 그대로 죽어갔나 보다. 아, 그렇게 그렇게, 영영 못 만날 줄 알았더라면 무슨 수로든 내 쪽에서 한 번 찾아나 볼 것을.
2025년 9월, 마산에 들렀다. 이 고장 출신의 문사(文士) 김형국 교수와 합포문화동인회의 강재현 이사장의 주선으로 가포 해변 옛 결핵병원의 흔적을 더듬었다. 새삼 흘러간 세월이 아련하다. 한때 시대의 낙인이자 훈장이었던 '결핵'이란 두 글자를 명패에서 떼버린 '마산국립병원'이 '결핵문학관'을 건립한다는 소식이다. 이 방외(方外) 노생의 넋두리 한 자락도 가포 하늘을 떠돌고 있을 뭇 원혼(冤魂)들의 굿거리라도 되었으면 하는 실없는 바람이다.
안경환 명예교수(서울대 로스쿨)·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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