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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 최불암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다. 곳곳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그의 족적을 기리는 기사와 영상이 연일 쏟아진다. 장례는 끝났지만, 대중의 가슴속에 남은 먹먹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 깊은 상실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연기 잘하던 노배우 한 명을 떠나보낸 슬픔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가 잃어버린 '진짜 어른'이라는 거대한 무형문화유산의 상실을 목도하고 있다.
과거 <전원일기>의 '김 회장'은 엄격한 가부장제 시대의 아버지를 연기하면서도, 결코 권위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자식의 허물을 덮고, 이웃의 아픔에 먼저 찌개 냄비를 들고 나서는 '품어주는 어른'이었다. <수사반장>에서는 범죄자의 서사마저 깊은 주름 속으로 삼켜내는 인간적인 공권력의 표상이었으며, 노년의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전국 팔도 이름 없는 촌로의 거친 손을 맞잡고 밥상머리의 구술사(口述史)를 묵묵히 기록한 다큐멘터리언이었다.
듣고 품어주는 어른
▲ 2일 서울 여의도 성당에서 고 최불암 배우의 장례 미사가 거행된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운구가 퇴장하고 있다.
그가 평생을 바쳐 빚어낸 인물들의 공통。은 '곁을 내어주는 따뜻함'이었다. 지시하고 훈계하는 어른이 아니라, 듣고 품어주는 어른. 초개인화와 각자도생의 경쟁 속에서 남을 밟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최불암이라는 존재는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공동체의 품'과 같았다. 그렇기에 그의 타계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거대한 영적 느티나무가 베어진 것과 같은 허망함을 남긴다.
전직 시골 학예사의 시선으로 볼 때, 최불암 선생의 유산은 방송국의 테이프 보관소나 소품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현대 민속 박물관'으로 향해야 마땅하다. 영국이 최장수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의 세트장을 대중에게 개방하고, 미국이 <프렌즈> 세트장으로 전 세계인의 향수를 자극하듯, 우리에게도 우리 삶의 이면을 담아낸 대중문화 유산을 공공의 기억으로 복원할 권리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지체 없이 방송국과의 공동 기획을 통해, 이 시대의 페르소나를 '미디어 민속학'의 관.에서 재조명하는 특별전을 열어야 한다. 대중문화 속 가상의 공간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 민속 유산으로 치환해 내는 것, 그것이 오늘날 국가대표 생활사 박물관이 증명해야 할 존재 이유다.
전시는 철저히 '한국 현대 생활사의 궤적'을 따라가야 한다. <수사반장>의 낡은 트렌치코트를 통해 급격한 도시화 시대의 애환을 조명하고, <전원일기> '양촌리 김 회장 댁'의 마당과 평상을 실제 스케일로 복원해 1980~90년대 농촌 근대화의 축소판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아가 <한국인의 밥상>을 위해 팔도를 누볐던 낡은 취재 수첩은 지역 구술사 아카이브 유물로 전시되어야 한다.
이 전시는 과거를 추억하는 단순한 레트로 소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불암이라는 거목은 떠났지만, 그가 대중문화라는 밭을 일궈 남긴 '진짜 어른의 온기'는 이제 박물관이라는 기억의 공간을 통해 우리 삶 속에 영원히 숨 쉬어야 한다.
▲ 우리가 채워야 할 평상 국립민속박물관 등 공공 기관에 1980~90년대 농촌 근대화의 축소판인 '양촌리 세트장'이 재현되길 제안한다. 장독대 옆 덩그러니 놓인 빈 평상이 마치 고인이 내어주던 넉넉한 품을 닮았다. 그가 비워둔 저 자리를 이제는 살아남은 우리가 따뜻하게 채워갈 차례다.
ⓒ 엄원식
머지않은 날, 전시장 한가운데 온전히 재현된 양촌리 평상 위에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가 나란히 앉아 있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관람객들은 오프닝 음악을 들으며 불암산 명예산주로서 그가 남긴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라는 겸손한 시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굳건했던 아버지를 호명하고,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대면하며 이런 서늘하고도 따뜻한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아픔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어른이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누군가에게, 찌개 한 냄비를 들고 찾아가는 따뜻한 어른이 되어주고 있습니까?"
이 묵직한 숙제를 우리에게 남겨둔 채, 우리의 영원한 김 회장이자 수사반장은 무대 뒤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가 비워둔 넉넉한 평상을 이제는 살아남은 우리가 채워갈 차례다. 우리 삶의 가장 시린 굽이마다 곁을 내어주었던 시대의 페르소나, 최불암 선생의 평안한 안식을 빈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문경에서 향토 문화와 지역 역사를 연구하는 학예사입니다. 우리 곁을 떠난 영원한 김 회장이자 수사반장인 고인의 유산이, 단절된 공동체를 잇고 진정한 어른의 부재를 묻는 따뜻한 전시로 반드시 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야마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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